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악의 문제는 수천 년 전부터 철학자들의 숙제인 동시에 신학자들의 숙제였고, 평범한 모든 사람들을 괴롭힌 고민이었다. 특히 ‘선하신 하나님’을 믿는 그리스도인, 보통 사람들처럼 ‘팔자’나 ‘운명’에 기댈 수 없는 그리스도인에게 이것은 반드시 한 번은 부딪치는 문제, 딛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. 같은 저자의 전작(前作)인 《네 원수를 내가 갚으리라》(나훔 강해설교)의 문제의식도 동일한 것이었다. 즉, ‘이스라엘과 유다가 아무리 하나님께 불순종했다고 해도 그들보다 더 악한 앗수르의 손에 심판을 당하게 하시는 것이 과연 공의로운 일인가? 왜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가 득세하게 하시고 자기 백성들이 그 악한 자의 손에 고통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시는가?’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. 하박국도 ‘왜 유다를 유다보다 더 악하고 잔인한 바벨론의 손으로 멸망시키시는가?’라고 묻는다. 《네 원수를 내가 갚으리라》가 악이 득세하는 현실의 신학적인 의미를 밝히고 악은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, 《하나님은 왜 악을 허용하시는가?》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렇게 절망적인 악의 상황에 직면해서도 춤추며 찬양할 수 있는 성도의 역동적인 믿음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다루고 있다.